(칼럼) 은행나무 가로수와 함께 공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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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街路樹)가 역사에 등장한 배경은 조선왕조실록 자료에 나타나 있다. 단종 1년(1453년) 5월 12일 의정부 대신들이 왕에게 큰길 좌우에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심고 벌목을 금지해달라는 청원을 올린다. 가로수 조성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식재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나가는 길, 신작로라고 불렸던 길 주변에 수양버들을 심었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늘어뜨려진 잎이 만든 그늘이 나그네 발걸음을 쉬게 했다고 한다. 또한 한강, 안양천, 중랑청 등 주요 하천변을 따라 식재되었다. 1975년 기준 서울 시내 가로수 중 36%를 점할 정도로 흔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수양버들 수나무가 뿌리는 홀씨가 호흡기 알레르기와 천식을 유발하는 꽃가루로 알려지면서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연간 6.9kg이 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정도로 공기 정화 능력이 탁월한 양버즘은 1980년대 공해가 심각해진 환경에서 최적의 가로수였다. 하지만 양버즘도 1년에 2m씩 자라는 빠른 성장 속도로 인해 상가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으로 20년 만에 감소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1971년 4월 3일 은행나무를 서울을 상징하는 시목(市木)으로 선정하였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은행나무, 회화나무, 소나무 등 다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런 결과가 강남구 신사동 은행나무 가로수길, 은평구 불광동 회화나무길, 중구 을지로 소나무길이 형성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이 식재된 은행나무는 서울의 무한한 성장을 상징하는 가로수이기도 했다. 이랬던 은행나무가 악취 나는 열매 민원으로 수나무로 강제 교체되거나 다른 수종으로 대체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이렇듯 도시 성장 변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가로수(街路樹)가 수난을 겪고 있다. 서울 시내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느티나무, 왕벚나무, 이팝나무, 칠엽수(마로니에), 소나무, 감나무 등 다양한 종이 식재되어 있다. 2020년 기준 서울시 가로수 약 31만 주 가운데 은행나무가 약 35%인 11만 그루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약 3만 그루 정도가 열매를 맺는 암나무이며, 낙과(落果)로 인해 길가에서 사라지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은행나무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리는데, 가을에 떨어진 노란 열매로 인한 민원이 증가하면서 교체 대상 1순위에 오른 것이다.
은행나무의 성장에 따라 열매를 맺는 암나무인지 확인하려면 15년 정도 지나거나 열매가 맺힌 것을 보고 식별이 가능했다. 하지만 관내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이 은행나무 암수 감별이 가능한 기술을 최근 개발한 덕에 가로수 열매 논란은 사라질 전망이다.
문제는 수십 년 동안 도로의 가로수로써 차량이 내뿜는 배기가스, 분진을 흡착하는 등 공기 정화 능력을 지닌 은행나무의 순기능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나무껍질(樹皮)이 두꺼워 화재와 병충해에도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기온 등 기후 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현시대에 공기 정화 효과가 탁월한 은행나무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을에 떨어진 열매의 냄새 때문에 다른 수종 또는 인위적인 수나무로 교체하는 세금 낭비 정책이 바람직스럽냐는 고민을 해야 한다.
지난 연말, 회기역에서 경희대로 나가는 회기로 주변의 가로수가 교체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현수막에는 악취 주범인 은행나무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회기로 은행나무 암수 교체 공사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인가? 향후 우리 후세들은 은행나무 열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억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식물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존재로 남겨질 수 있다. 행정의 입장에서 조금 불편하겠지만 은행나무 열매가 바닥에 바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수집 망을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외국 관광객이 서울을 기억할 때 노란 잎으로 뒤덮인 서울 가로수를 가장 많이 기억한다는 자료가 있다. 인간의 편의만 생각하는 정책으로 주변의 수목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살리지 못하는 정책이 향후 재난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양세훈 박사
(본지 논설위원, 숲해설가/숲길 등산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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