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그날의 함성을 잊지 말자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1일은 100년 전 3·1운동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과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기리며 경축과 화합의 정서를 느끼도록 다양한 행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1919년 3월 1일의 함성이 다시 외쳐졌다. 3·1 함성은 최근 일본이 군국주의화 되고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망발하는 아베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우경화 세력들에게 일침을 놓는 외침이고 경고이다.
전국민이 참여한 100년 전의 3·1운동은 시민 저항 운동이었고, '대한민국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외침이었다. 3·1운동이 100주년이 되는 오늘 새로운 100년을 여는 평화의 원년을 만들어야 한다.
3·1운동은 미국 대통령 윌슨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민족 자결주의를 주장하여 식민지 상태에 있는 민족들에게 독립의 희망 의지를 주어,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의 항일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는 가운데 일어났다. 당시 국내는 일제의 가혹한 무단 통치와 수탈로 반일 감정 고조와 고종 황제 독살설이 확산되고 있었다. 국외는 신한청년당이 김규식을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여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고, 만주에서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대한 독립 선언서 발표, 도쿄 2·8 독립 선언 발표 등이 촉진제가 되었다.
3·1운동은 전 민족적인 항일 운동이 불같이 일어나 일제의 식민 통치 방식이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수립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중국의 5·4 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3·1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의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으로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민족의 해방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동대문구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여 구민과 함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 마련하여 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구민 화합의 장을 만들었다. 구는 이외에도 유관순 열사 조카 유장부 표창,   청소년 5백 명과 플래시몹, 도전! 3·1절 골든벨, 독립운동 주제 영화 상영, 3·1운동 100주년 기념 명사특강, '그날의 함성' 사진전, 태극기 거리 및 터널 조성 등으로 3·1운동을 보고 배우며 한번 더 생각하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구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구민들도 100년 전 일어난 3·1운동을 다시 세기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같이 탈냉전 국제화시대에 국민이 깨어 있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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